지도교수에게 좋은 이메일 보내는 방법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시고, 학생들의 요구에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해 주시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복 받았다. 학생 시절 내가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대부분 교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논문을 쓰다가 부딪힌 문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지도교수에게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아주 허다했으며,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작성한 논문을 지도교수에게 보여줬더니, 책상 위 귀퉁이 어느 한 곳에서, 혹은 받은 편지함 어느 깊숙한 곳에서 교수의 관심을 잃곤 했다.

왜 교수님은 학생들의 질문과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지 않을까? 이 글의 첫 문장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써보겠다. 자신의 질문에 지도교수님이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시고, 자신의 요구사항에 기대 이상의 것을 지도교수님이 해 주신다면, 복 받았다. 질문과 요구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교수님이 학생 지도에 얼마나 열의가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학생의 관점에서 지도교수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이다.

지도교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메일을 통해서 교수님께 질문하고 요구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교수님, 제가 현재 작성하고 있는 논문을 보내드립니다. 괜찮은지 한 번 봐주십시오.”

아주 높은 확률로, 교수님은 괜찮은지 봐주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저 기계적으로 논문의 논리나 내용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 대한 제안만 해주기도 한다. 논문이 완성되어 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어 보고, 여러 가지 문제점 및 개선안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저렇게 이메일을 보내면, 안 읽어본다.

문제점이 뭘까? 일단 교수는 바쁜데, 학생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식으로 질문/요구를 한다면,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생각해 내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교수는 아마 그 일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미룰 것이다. 그리곤 잊을 거다.

학생이 작성하고 있는 논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학생은 대체로 이미 알고 있다. 교수가 더 잘 알고 있다면, 이 전의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이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논문을 그저 도와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한 내용에서, 꼭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불안한 곳에서 꼭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자신 없는 부분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논문 전체를 던지는 대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콕 찍어, 질문을 쪼개서 간단하게 만든다. 그 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의 각각의 항목의 핵심적 질문을 쓴다. 그리고는 그 리스트를 논문과 함께 이메일로 보낸다.

아니다. 그 리스트의 항목 한 개, 혹은 두 개, 아주 많이 양보해서 세 개 정도만 보낸다. 질문이 얼마나 대답하기 쉬운 질문인지에 따라 달렸다. 질문을 쪼개고 쪼갰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답하기에 생각을 꽤 해 봐야 하는 질문이면 한 번에 한 개만 보낸다. 이메일로 질문하는 경우에, 그 이메일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 생각이 필요한 경우라면, 교수는 어쩌면, 나중의 여유시간으로 대답을 미룰지 모르고, 아마 그리곤 잊을지도 모른다.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보내면, 교수가 질문 하나에 대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해서, 답장을 미루다가, 그 하나의 대답마저 못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교수마다 반응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답장을 미뤘다가, 결국은 학생에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경험이 있다.

물론, 연구라는 것이 아무리 단계를 쪼개고 쪼개도, 더는 간단해질 수 없을 때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여전히 질문의 단위를 쪼개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을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쪼개진 물음도 질문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비교해보자.

  1.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ABC 방법으로 접근했더니,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ABC 방법이 def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def 요소를 고려하는 DEF 방법이나, GHI 방법을 사용해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어느 방법이 더 나을까요?

1번의 질문도 교수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번 질문이 훨씬 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1번 질문은 주관식이고, 2번 질문은 객관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번 질문이 답변자가 생각해야 하는 길을 간략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생이라면, ABC 방법으로 접근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을 거다. 1번 질문에서는 학생의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고, 2번 질문에서는 그 고민을 질문에 포함했다. 교수는 학생의 고민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고, 학생이 이미 해 본 고민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면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가 쉽게 된다.

2번과 같은 질문에서도, 교수의 답이 반드시 DEF, GHI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답이 아닐 수도 있다. 발생한 문제가, 실제로는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고, def 요소가 핵심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JKL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1번 질문보다는 2번 질문이 훨씬 나은 질문이다.

물론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질문 할 경우에도,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안 된다. 핵심만 추려서 질문해야 한다. 이메일을 너무 길게 쓰면, 교수가 읽는 것조차 미룰지도 모른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작은 단위로 쪼개다 보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학생 스스로 해답을 얻을 가능성도 많다. 해답을 얻지 못해 질문하는 많은 경우는 본인 스스로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질문 쪼개어,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 Feynman Algorithm (파인만 알고리즘)에 대한 글을 참고하자.

지도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나쁜 교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혹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할 때에는 도와주고 싶으나, 도와줄 수 없을 수도 있다. 교수에게 질문하고 요구를 할 때, 만족스러운 대답과 반응을 원한다면, 교수가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 줘야 한다.

이 잡담은 사실, “하나의 이메일에는 하나의 질문/요구만을 담아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짧게 보내야 한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메일 예절을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가 2003년에 참석했던 한 모임에서 접한 “교수의 시간을 아껴주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다.”라는 짧고도 함축적인 조언을 역시 쓸데없이 길게 쓴 것에 불과하다.

다음 글을 참고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메일의 제목과 내용은 일치해야 한다. 잊고 있던 학생의 질문이 생각이 나서, 검색했는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제대로 찾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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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Responses

  1. 박동순 says: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직장에서도 필요한 내용이네요

    • 권창현 says:

      반갑습니다. 직장에서는 대화할 상대가 훨씬 많을테니, 아마 더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

  2. daybreaker says:

    저도 지도교수님이 가끔씩 이메일 짧게 하라고 말씀해주시곤 합니다. -_-;;
    그래서 항상 결론/질문부터 적는다는 느낌으로 쓰기는 하는데, 자꾸 주변상황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어떻게 두괄식으로 쓰긴 썼는데 보내놓고 보면 뒤에 세부내용이 잔뜩 붙어있다든가… 근데 교수님 입장에서는 일단 길면 부담스러워하시는 눈치더라구요. 제가 봐도 교수님이 정말 이것저것 할일이 바쁘셔서,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교수님의 시간을 아끼는 학생’이 되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듯합니다.
    MSR에서도 매니저와 메일 주고받을 때 꼭 짧게 써야지 다짐(…)해봅니다.;;

    • 권창현 says:

      사실 이메일의 적당한 길이는 받는 사람의 선호도/성향에 따라, 그리고 이메일의 주제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메일의 길이와 형식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면, 아마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3. 이성민 says:

    안녕하세요. 분야는 다르지만 교수님 글을 가끔 훔쳐보는(?) 학생입니다. 굉장히 유익하네요. 감사드립니다.

  4. 조소인 says:

    교수님.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자주 들릴테니 좋은 글 종종 올려주세요

    • 권창현 says:

      감사합니다. 안타깝고 죄송하게도 자주 들리셔 봐야 새로운 글은 잘 없을 것 같네요. 게을러서 자주 뭘 쓰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5. 최지환 says:

    학생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들어와서 좋은 글들 잘보고 갑니다~

  6. shakatak says:

    구글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요. 글이 너무 좋습니다

  7. 김선희 says:

    교수님, 좋은글 접할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8. 고은진 says:

    박사과정 준빈 중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좋은 글 감사드리고 유익하게 참고하겠습니다 ^^

  9. says:

    교수가 짱이내

  10. 기계쟁이 says:

    현재 박사과정인 학생인데, 블로그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글 또한, 지도교수님께 질문할 때, 당연한 거지만 다시 한 번 새기게 되는 글입니다! ㅎㅎ

  11. tao says:

    소중한 글 읽구요 ~~ 참 힐링 하고
    다시 지도 교수님을 대하려고해요
    감사합니다
    멋져요~~

  12. Hana says:

    직장에서 메일쓸때 하는 고민을, 대학원에서도 동일하게 하는군요 ㅎㅎ
    감사히 읽고 갑니다.

  13. 김우진 says: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연구 분야는 다르지만 참고할 내용들이 많네요. 학생들에게 두루 읽으라고 해야겠습니다.

  14. 불쌍한 says:

    논문지도 안해준지 3개월 넘어가는 대학원생은 그저 흑우지요~~ㅋㅋㅋㅋ

  15. 주먹 쥐고 일어서 says:

    3월에 박사과정 막 시작합니다. 제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을 잘 만난 편입니다. 석사논문 쓰는 내내 교수님 시간을 뺏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교수님께서는 기꺼이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September 27, 2012

    […] 지도교수에게 좋은 이메일 보내는 방법 Posted by zhimin on 목요일, 9월 27, 2012, at 12:21 오후. Filed under 경제. Follow any responses to this post with its comments RSS feed. You can post a comment or trackback from your blog. […]

  2. October 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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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arch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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