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지도의 즐거움에 대하여

지난해 8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KAIST에서 근무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외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면, 한국에 들어가서 어떠냐, 좋으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고, 그때마다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라는 말을 많이도 하고 다녔다.

최근에 ‘나는 왜 한국 생활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국 생활에서 만족스러운 점들, 어떤 순간들에 재미를 느꼈는지는 어렴풋하게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왜?’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KAIST 부임 벌써 1년. 바쁜지, 행복한지 묻는 중요한 질문 앞에서, 오늘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고뇌에 빠진 모습이다.

 

 

우선 정말 단순하게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나 됐기 때문에 나도 한국도 여러 가지 의미로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가 태어난 나라이고, 언어적·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나라다. 이런 환경이 주는 알 수 없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KAIST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몇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로는 내 모교라는 점이다. 내 추억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단순한 직장 이상의 의미를 준다. 둘째로는 한국 사회에서 KAIST가 가지는 지위 때문에 내게 주어지는 많은 기회들이 있다. 좋은 학생들을 만나기에도, 좋은 연구 프로젝트를 만나기에도 유리한 환경이다. 셋째로는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KAIST의 미션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KAIST 교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미션과 내가 속한 기관의 미션이 일치하는 점이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다.

자극이 되는 동료 교수님들 때문이다. 내가 속한 학과 안팎에 지적으로 자극을 주시는 여러 동료 교수님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과 편안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분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자극이 많이 되지만, 그분들과 사적이며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서로의 개인사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도 해보는데, 그 과정이 많은 자극이 된다. 당연히, 미국이라고 그런 분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국에는, KAIST에는 바로 옆 방에 계시기도 하고, 같은 건물, 같은 캠퍼스에 계신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자극의 빈도가 높다.

오믈렛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같은 학과 교수님과 창업을 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창업하고, 동료를 모으고, 투자받고, 회사의 모양을 가꾸어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그 도전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기반으로 한 회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훌륭한 동료들을 맞이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CTO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인사, 법무, 계약, 재무, 세무 등 관련 일들도 많이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있다. 교원의 기술 기반 회사 창업이라는 점이 KAIST의 미션과 부합한다는 것도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내 학생들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지금 만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데, 그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말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내가 만난 KAIST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재능 넘치고 성실한 학생들이다. Work ethic이 매우 훌륭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것에 대한 인내심이 높은 편이다. 이런 학생들을 마다할 교수가 어디 있겠나? 나는 이것만으로도 복받았다. 독립적인 사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고집, 비정형 문제 해결 능력 등은 아직 부족한 편으로 보일 때도 있는데, 아직 학부 졸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학생들이니 당연할 것이라 생각된다. 부족한 점은 지도교수인 내가 잘 가이드해주고 조언해주면 될 일이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학생들이라는 점이 주는 이점이 꽤 있다. 학생들과 공부만 하고 연구만 하면 될 일이겠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섬세한 피드백을 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과 대화할 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만 대화할 때와 비교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의 해상도가 매우 높아진다. “잘 이해되었나요? 네, 이해했습니다.”와 같은 단순한 대화에서도 내가 그 학생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 학생의 표정과 몸짓, 말하는 억양 같은 것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그에 맞게 내 다음 행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해상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학생들도 즐기고 있는지, 학생들의 성장에 정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있으나, 다만 이런 방식이 내가 선호하고 즐기는 방식이라는 거다.

한국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충족감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남긴 글에서 미국에서 지낼 때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고 말한 바 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야 아무래도 그 점들이 좀 더 명확해졌다. 한국 학생들을 성실히 지도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되며, 그 점에서 학생 지도에 대한 동기부여가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다고 한들, 학생들을 지도하는 점이 나를 그렇게까지 행복하게 만들 일인가?

대체 왜?

둘째 아이 키우는 것 같다. 이게 내 결론이다.

흔히 첫째 아이는 부부가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도전적인 상황에서 맞게 되는 경우가 많고, 부모로서의 경험 미숙 등으로 좀 더 엄격하게 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필요 이상의 텐션을 유지하며 키우게 되어 부모와 아이 양쪽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기도 한다. 반면에 둘째 아이는 대체로 부부가 조금 더 안정되었을 때, 그리고 아이 양육 경험도 충분히 쌓였을 때 맞이하게 되며, 그래서 좀 더 여유가 있다. 흔히 ‘숨만 쉬어도 예쁘다’라는 표현으로 둘째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경험과는 일치한다. 내 첫째 아이는 박사과정 막학기에 태어났고 엄마, 아빠가 모두 테뉴어 트랙 조교수일 때 자랐다. 둘째 아이는 엄마, 아빠가 모두 테뉴어를 받을 때쯤 나고 자랐다. 여전히 바쁘고 힘들었지만, 둘째 양육은 첫째 때와는 양상이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첫째 아이는 좀 더 차분하고, 둘째 아이는 좀 더 애교 넘친다.

한국에서 바로 테뉴어트랙을 시작한 교수님들도 첫 지도 학생 그룹이 기억에 많이 남으실 거다. 서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같이 공부하고 같이 연구하며 헤쳐 나가면서 교수와 학생 모두 성공적으로 커리어에 안착하고 독립적인 학자가 되어 졸업하는 시기를 보내면 서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테뉴어 트랙 조교수의 스트레스가 무시무시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연구비 확보의 어려움, 연구 성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 겪는 초조함 등으로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고, 어쩌면 학생들에게 불필요하게 모질게 대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학생들도 그 과정에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테고, 졸업할 때쯤이면 지도교수가 미워질지도 모른다. 첫째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생긴다.

나는 미국에서 15년간 15명의 박사과정 학생을 지도하면서 이 과정을 모두 다 겪고 한국에 왔다. 다양한 유형의 학생을 이미 지도 해 본 적 있으며, 연구 역량도 쌓았고, 인적 네트워크도 갖추었으며, 테뉴어도 받아서 마음 조급할 일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여유롭다. 위에서 말한 KAIST의 여러 이점들 때문에, 또 여러 멋진 동료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첫해부터 매우 운이 좋게도 연구비에 대한 걱정도 많이 없는 상황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걸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이런 심적으로 물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에서 학생 지도를 하니, 성실하고 재능 있는 내 학생들이 안 예뻐 보일 리 없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만나는 주간 미팅이 즐겁지 않을 리 없다. 학생들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성취를 이뤄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조마조마하면서도 매우 즐겁다. 학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좀 더 관대한 마음으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운 좋게 여유로운 상황에서 내 마음에 드는 훌륭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이 매우 즐겁다. 학생들은 훌륭하고, 나만 잘하면 된다.

‘숨만 쉬어도 예쁜’ 내 학생들은, 다만 숨을 좀 열심히 쉬어야 하기는 한다. 아직 대학원 1~2년 차들이라 수업 들으면서 숙제도 많은데, 내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들도 좀 있고, 개인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 그걸 모두 다 해내야 하는데, 또 내가 신나서 벌리는 일들이 좀 있다. 그런 것들 서포트하느라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학생들이 다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한계점에 가까워질 뻔한 일들도 몇 차례 있었던 것 같은데, 해상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의 도움으로 일단은 잘 지나간 것으로 믿고 있다. (이건 학생들 말도 들어봐야…)

즐거운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고, 앞으로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성실히 잘 지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즐기는 만큼, 내 학생들도 나와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학위 과정 중 언젠가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그때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계속 학생 지도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다.

셋째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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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1. sdh says: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 3학년입니다.
    운좋게 훌륭한 지도교수님 아래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여러 고민들을 교수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글이 유익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밌어서,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새벽까지 정주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
    한동안 글 업로드가 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작성해봅니다.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 블로그를 읽을 수 있길 기원하며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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