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작곡가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나이 서른이 넘어서 아직도 무슨 만화책이냐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만화책을 읽고 있고, 좋은 만화를 읽으면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만화 중에서 “노다메 칸타빌레” 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 노다메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노력하는 중에 겪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혹은 보여주는 내용이다. 노다메의 대학교 지도 교수님인 타니오카 선생님이 노다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다른 작곡가들도 노다메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노다메는 유치원 선생님이 꿈일 만큼,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순수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다. 타니오카 선생님과 함께 “복실복실 조곡” 이라는 연작을 작곡을 하는 데, 노다메는 여기서는 어떤 동물이 나오는 부분이고 저기서는 어떤 동물이 나와서 춤을 추면서 등장한다는 등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들 한 가득 가지고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낄 즈음, 타니오카 선생님이 위의 이야기를 한다.

노다메는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때, 그 작곡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같이 느끼고 싶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읽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악보를 읽을 때, 음표의 연속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었던 거다. 반대로 본인이 자신의 곡을 쓸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은 데, 이런 노다메를 보고, 타니오카 선생님이 중요한 말씀을 해 주신다.

작곡가의 입장이 되어서 악보를 읽고 해석하는 것 만큼, 주로 글로써 대화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독자의 입장이 되어서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또 다른 중요한 대화의 도구는 수학, 그림, 표, 그리고 말로 하는 대화도 있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불멸성을 위해서는 (라고 쓰고 “승진을 위한 실적을 위해서는” 이라고 읽는다) 글을 쓸 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논문을 읽을 때는 궁금 한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반대로, 내가 글을 쓸 때는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쓸 게 너무 없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라는 식의 단편적인 이야기 밖에 못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저 타니오카 선생님의 말씀 대로 (혹은 그 말씀의 반대로) 생각을 해 보면, 내가 논문이나 글을 쓰면서 무엇을 써야 하는 지는 명확하다.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쓰면 된다.

지금도 내 글쓰기에는 아주 문제가 많지만, 대학원생이던 시절에는 더욱 문제가 많았다. 위에서 말 한 것 처럼, 쓸 내용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 어려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 하는 데, 첫번째는 내가 했던 연구가, 내가 쓰고 있는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 자신이 몰랐던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 한 불친절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보자.

아직까지 완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서서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 하고, 단지 독자를 두려워 하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이 논문을 읽는 사람이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나를, 그리고 내 논문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거 같다. 물론 논문을 쓰면서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경우 나에게만 뻔한 이야기 일 때가 많다. 그래서, 독자의 입장에서 독자가 궁금해 할 만 한 것들을 적재적소에서 친절하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내 논문을 처음에 읽고 심사하는 사람들이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더욱 중요하다.

친절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세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친절함이란, 이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무엇인지를 논문의 첫번째 페이지, 혹은 두번째 페이지, 아무리 늦어도 세번째 페이지에서는 간결하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는 것 까지를 포함한다.

글을 쓸 때 흔히 하기 저지르기 쉬운 불친절함은,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갑자기 어떤 내용을 던지는 것이다. 소위, 밑도 끝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명확해 보이는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글을 쓰는 본인은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하고 생각해왔던 내용이라서, 자기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무르 익어야 키스도 하고, 방귀가 나와야 똥도 나오듯이, 글을 쓸 때도 분위기를 만들고 방귀를 미리 뿜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내용은 앞의 어떤 내용과 관련이 있고, 뒤에 나오는 내용과는 이렇게 돌아서 관련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 한 어떤 연구와도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쓰지는 않을 때가 많다. 독자가 여기까지 읽었으면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혹은 바램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같이 불성실한 (혹은 무식한) 독자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아마 같은 논문을 다섯번쯤 읽으면 알아차릴 거다. 논문을 심사하는 사람들은 아마 더 불성실하고, 단락과 단락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화 마저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똥과 똥 사이에는 방귀가 들어가야 한다.

갑자기 툭 던지는 화두는 학생과 지도교수 사이의 대화에서도 발생한다. 학생은 본인의 연구에서 발생한 고민에 대해서 교수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똥부터 내뱉기 시작한다. 하지만, 교수는 당연히 모른다. 알고 있을 때도 있지만 모르고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 똥을 누기 시작할 겁니다’ 라는 신호로써 방귀를 던져줘야 한다. 의욕에 넘쳐서 교수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부터, “equation 3번에 technique 1번을 적용해 봤더니, 이상한 결과가 나오던데 어떻게 해석할까요?” 라고 묻는 학생이 있다. 교수 방에 들어오자 마자, 똥부터 누는 겪이다. 내가 대학원생 때 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아주 자주 저지르고 있는, 실수 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랑 대화하면서 방귀도 안 끼고 똥부터 누면 성질나더라 이다. 아마 내가 똥부터 누면 다른 사람이 성질을 낼 것이다.

(어떤 종류이든) 대화를 할 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저 사람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위대한 탄생’ 이라는 오디션 프로에서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심사를 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글로 쓰고, 심사를 하고, 심사를 받는 것도 글로 주고 받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데, 쓰다보니 똥이야기 까지 하게 됐다.

네글자 요약: 역지사지
다섯글자 요약: 방귀를 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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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esponses

  1. R,Lee says:

    이렇게 훈늉한 글이 ㅠㅠ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2. 김탱 says:

    저 이 만화 엄청 좋아했었는데…일본 드라마까지 봤었죠.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네요. 저도 만화 보면서 많이 울고 많이 배웁니다. ㅎ

  3. HJ says:

    글쓰기가 너무도 어려운 대학원 1인. 졸업을 위해 열심히 끼는 연습을 해야겠네요 ㅋㅋㅋ

  4. 준샤랑 says:

    XD 어느 과를 갈지 찾아보다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아직 대입 준비하고 있는 저에겐 먼 이야기지만 에세이 쓸 때 불친절해지는 건 동감입니다.. ㅠㅠ 9학년이나 10학년때는 아예 Intro-Body-Conclusion식으로 요점을 계속 되풀이하라고 배웠지만 이제 형식을 탈피하고 좀 더 고급(?)스럽게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요점이 꼭꼭 숨어버리지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설명하신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서론에서 쓰신 비유처럼, 제가 듣고 싶은 악상을 작곡하듯이 제가 읽고 싶을 글을 쓰면 다른 사람들도 읽어주겠지요? 으항항 넋두리가 된 것 같네요..////

    • 권창현 says:

      글 잘 쓰시는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일단 아무렇게나 떠오르는대로 쓰고, 그 뒤에 고쳐쓰기를 수십 수백번 반복하는 게 좋은 글을 쓰는 길이라고들 하더군요. ^^; 저는 그렇게 잘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글이 이 모양입니다. -_-;;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

      • 준샤랑 says:

        XD 아닛 이렇게 답글을 빨리 달아주셨다니!! 그렇군요….. 결국 끈기와 인내로 퇴고하는 것만이 답인거군요…ㅎㅎ 좋은 조언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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