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의 엘사 그림에서 배우는 점
지난 3월에 만6세가 된 제 딸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립니다. 제 눈에만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께서도 좋게 봐주시니,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잘 그립니다.

딸 아이가 그린 엘사 그림
제 아내는 미술과 교수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치는 게 직업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재능이 있다”거나, “엄마에게서 재능을 물려받았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까, 타고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옆에서 제가 계속 딸 아이를 관찰해 온 것을 토대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환경
딸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미대 교수’ 엄마를 둔 것이 그림을 그리는 데 유리한 환경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딸 애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매일 같이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돌도 안 지난 둘째 키우고 일 하느라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엄마에게서 직접 배우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분명히 유리한 환경입니다.
엄마가 바쁠 때는, 저녁에 어린 딸을 미술 작업실에 데리고 가곤 했습니다. 거기서 엄마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딸에게 “장난감”으로 준 것이 그림그리는 도구들입니다. 펜이라던가 붓이라던가 물감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라, 프로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릴 때, 한 두가지 종류의 그림 도구를 접합니다. 크레파스 혹은 수채물감입니다. 제 딸은 아주 어릴 때 부터 색연필, 마커, 싸인펜, 수채물감, 유화물감 등 다양한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것도 10가지 혹은 20가지 색이 아닌 50가지 혹은 100가지 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굴러다니는 장난감들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엄마가 아이랑 놀아주는 방식도 좀 다릅니다. 제 딸의 동갑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사회과 교사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아이랑 놀아 줄 때, 주로 책을 읽어 주거나, 글자를 쓰면서 놀아주곤 했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만4세 무렵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을 일찍 익혔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친구입니다.
아이랑 놀아 주는 방식이 부모의 전공 분야에 따라 좀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공학을 전공한 저는 아이랑 놀아 줄 때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숫자를 개입시킵니다. 아이가 과자를 달라고 할 때도, “몇 개 줄까?” 라고 물어보고 아이에게 과자의 개수를 확인하게 하는 식입니다.
제 아내는 아이랑 놀아 줄 때, 그림을 그려주곤 했습니다. 강아지도 그리고 고양이도 그리고 호랑이도 그리면서 놀아줍니다. 이렇게 놀아주는 것이 제 아내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다른 엄마들은 그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곤 깜짝 놀라기도 했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재능을 물려받았다”라거나 “타고났다”라는 말은 틀린 말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타고난다라는 것이 가능한 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에 적합한 환경을 물려받았다라고는 분명히 말 할 수 있겠습니다.
노력, 연습
유아기 때의 그런 환경 탓인지, 제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루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레터 크기) 종이가 일 평균 5장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10장 정도 쓰는 데,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도 (아주 가끔) 있기 때문에, 5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림 그리고, 학교 가서 그림 그리고, 학교 다녀와서 ‘방과 후 학교’에 가면 그림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그림 그립니다. 정말 열심히도 그려댑니다.
아이패드에서 유투브 앱을 띄워놓고는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올려 놓은 동영상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말, 고양이, 강아지, 독수리, 사람 등 아주 다양한 그림을 봅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사람, 컴퓨터에 디지털 펜으로 그리는 사람, 스케치만 하는 사람, 마커로 채색하는 사람, 물감으로 채색하는 사람, 컴퓨터로 채색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도구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봅니다. 이것도 하루에 평균적으로 두 편이상의 동영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제 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주제는, 말, 유니콘, 독수리, 엘사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기 시작했던 말이나 유니콘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과연 몇 마리나 그렸을까요. 제 생각엔 수백마리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 영화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엘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맨 위의 그림 처럼 잘 그리지는 못 했습니다. 사람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엘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머리카락이나 손 같은 것을 잘 그리지 못 하겠다며 성질도 부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개월간 열심히도 그려댔습니다. 구글에서 ‘Elsa coloring pages’로 검색하면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색칠공부’ 그림이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그림을 섭렵했습니다. 그것도 4~5차례 정도로.
맨 위의 (제 눈에는) 잘 그린 엘사 그림의 경우에도 한 번에 그리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저런 머리 모양을 하고 정확히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엘사를 그린 것이 수 차례 됩니다. 여기에 한 예가 있습니다.

다른 엘사 그림
그러니까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은 “물려 받았다” 혹은 “타고 났다” 라기 보다는 좋아해서 열심히 연습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경험
제 친구인 양진규 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 말하기를 잘 하려면 말하기만 잘 해서는 한계가 있다. 읽기, 쓰기, 듣기 실력이 함께 향상되어야 말하기도 잘 할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저런 의미였습니다. 항공우주공학 박사이기 때문에 언어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4개월 전 즈음에 ‘Frozen’을 처음 시청하고 난 뒤, 제 딸은 여느 다른 여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엘사에 푹 빠졌습니다. 아이튠즈에 영화가 발매되자마자 다운 받아서, 시청하기를 수십번, OST를 구매해서 듣기를 수십번, 직접 노래 부르기를 수백번 (아내와 제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입니다), 인형 갖고 놀기를 수십시간, 집에 있는 이불과 옷가지를 모아다가 코스튬 플레이 하기를 수십번, 유투브에서 엘사처럼 분장하는 동영상을 시청한 것이 수십번. 그러니까, 엘사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엘사의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번씩.
아마 지금 다른 만화 캐릭터를 그리라고 하면 엘사처럼 잘 그리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려본 경험도 없고, 그 캐릭터에 대해서 엘사만큼 잘 알지도 못 하기 때문에 머리 모양이라던가 의상이라던가 자세라던가 하는 것을 제대로 그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제 딸을 계속 관찰해 본 결과, 제가 배울 수 있는 점은 결국엔 오랜 세월동안 여러 사람들이 수천, 수만번씩 말했던 그 ‘진리’입니다.
– 즐기는 사람을 당하지 못 한다.
– 뭐라도 열심히 꾸준히 하면 잘 할 수 있다.
– 한 곳을 깊게 팔려면 우선 넓게 파야 한다.
조금 생뚱맞은 결론이지만, 이상 제 잡생각을 가장한 ‘딸 자랑’ 이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그 좋아하는 것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것이 올바른것 같습니다. 글을 빨리 깨우치거나, 그림을 잘 그리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래 놀이인 큰 아이를 보면서 이번달월급으로는 꼭 커다란 모래놀이 셋트를 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지난달엔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파라솔을 구입했습니다!.)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래놀이 셋트가 생기면 아이가 정말 좋아하겠네요!
조카바보 늙은이모인데요 조카가 처음 말을 배울때가 생각납니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도대체라는 단어를 먼저 말하더군요. 조카에게 안된다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동생부부의 양육방침에 따라 우리 가족은 일단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딱 맞게 그 단어를 사용했을 때 우리는 약속도 안했는데 과한 리액션과 그 단어를 반복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랬더니 조카가 그 단어 대신 이제 다른 단어를 막 붙여 사용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외국어를 잘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요. 어린 조카도 한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요. 살면서 모든 걸 너무 쉽게 가지려고 하고 핑게를 댔던 제가 부끄럽더군요.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말 배우는 과정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하지요. PhD Comics 중 Wisdom from my 3 Year Old 라는 게 있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http://phdcomics.com/comics.php?f=1554
http://phdcomics.com/comics.php?f=1595
http://phdcomics.com/comics.php?f=1659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걸 좋아하는 환경에 놓여있는 아이가 그린 그림, 재미있네요.
어떻게 이걸 이 아이가 이해했을까, 하고 종종 놀라는 일이 있는데, 어쩌면 그게 환경에 의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lime님의 자녀는 이해력이 좋은 아이인가 보네요. 어쩔 수 없이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부모의 존재 자체가 어린 아이에게는 가장 큰 환경이니까요.
좋은 글 참 많이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교수님 잡생각이라는 블로그 타이틀을 제 개인 블로그 한 메뉴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 여러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보려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잡생각’이라는 단어야 일반적인 단언데, 제가 양해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ㅎㅎ
반갑습니다. 인터넷 서핑중에 얼떨결에 검색중 발견한 선생님 블로그에서 제 머리속퀘스천이 한방에 해결되었네요.
– 한 곳을 깊게 팔려면 우선 넓게 파야 한다.
좋은글,생각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딸래미 그림 보다가 얼떨결에 든 잡생각에서 이예지님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니 즐겁습니다. 어떤 고민이었는지 궁금하네요 :)
안녕하세요. 남편이 모임에 갔다가 아주 좋은 정보를 물어왔네요.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둘째가 있군요 :) 저희집 막내가 어려서부터 노래하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게 환경때문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말하고 농담따먹기를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저녁이 되면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픈 일도 많았지만요. 생각해보니 막내는 두살무렵부터 형아들이 피아노를 치면서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밴드악기를 하면서 거의 매일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생활을 했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남다른 음감을 가졌을 법한데, 우리는 목청이 크다는 이유로 조용히 하라고 구박을 했거든요… 작년에 가족이 같이 프로즌을 보려갔다가 완전 감동을 받았지요. 모든 아이들처럼 계속 영화주제가를 불러대는 아이때문에 올 여름에 “프로즌” 뮤지컬 캠프를 보냈는데, 선생님이 “어디에서 이제 왔니?” 하며 너무 반가와하네요. 알고보니 저희막내처럼 기운이 넘치고 관심사가 많은 아들들은 춤과 음악과 노래가 한데 어울린 뮤지컬이 금상첨화라는 거지요. 관심사가 맞는 활동을 찾아주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앗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 너무 반갑습니다. 네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 언젠가 다시 뵐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글쓴이는 딸아이의 행동을 누구보다 자세히 관찰합니다. 어떤 동영상을 보는지, 어떤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지까지. 그러니까, 딸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여느 다른 아빠들과 마찬가지로 딸에게 푹 빠졌습니다.
ㅋㅋㅋ 글이 행복해보여서 한번 따라해봤습니다 ^.^
멋진 아빠를 둔 따님이 부럽네요!
멋져요
와우.. 저희 딸도 여름이면 만 6세가 되는데…
따님의 엘사그림도 그렇지만… 저도 아이의 그림을 보면 정말 영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전 소시적 미술에도 꽤나 소질 있었던.. 그러나 현재는 공학 중인데요..
아이의 미술적 재능을 보고도 그 길을 굳이 갈 것은 아니니 그냥 놔두자 하면서 아무 것도 encouraging해주지 않았어요. 열성엄마가 될 것은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접하게 해 줄 필요는 있었겠단 생각이 드네요.
유투부 동영상이라든가.. 더 크고 많은 세계가 있다는 것은 보여줄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아… 박사과정 논문 준비하면서 검색하다 들어왔습니다. ㅎㅎ 쉐어링 감사합니다~
아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선택을 같이 고민은 해주되, 대신 해 주어서는 안될 이유라고도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글들이 너무 많네요!
지금은 딸 분이 12세가 되셨겠네요!
저보다 한 살 언니인 따님~ㅎㅎ
지금 그림도 좀 궁금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실지..
좋은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