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권창현’ 창간호 발행에 부쳐

이런 제목의 글을 쓰다니 저는 어쩌면 출판사 편집장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딴 짓(?)을 좀 해봤습니다. ‘Changhyun Kwon Quarterly’  혹은 ‘계간 권창현’을 발행하기로 하고 창간호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교수입니다. 연구자이자, 교육자이자, 학교 직원이자, 또 어떤 의미에서는 구멍 가게 사장이기도 합니다. 연구자이다 보니 연구 논문을 쓰게 되는데요, 제가 쓰는 논문을 계간지 형식을 빌어서 한 번 모아서 온라인으로 편집해 보기로 했습니다.

http://quarterly.chkwon.net

계간 권창현 표지

윤종신씨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지켜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가수가 자신의 곡을 정식 앨범으로 발표하기 전에 매월, 월간지 형태로 발행한다는 것 참 매력적입니다. 여러가지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리라 생각합니다. 그 고민 중 하나는 아마 음악 활동을 꾸준하게 오랫동안 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저는 2003년에 대학원에 입학해서 지금껏 11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논문도 몇 편 출판했는데, 뭔가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연구 활동에 활력을 더하고 동기부여에도 도움이 되고자 ‘월간 윤종신’과 비슷한 형태의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욕구에서 비롯 된 점도 있습니다.

지금껏 연구를 하고 논문을 출판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한 분야에서 오래 꾸준히 활동한 사람이 결국 더 잘 하게 되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내 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특출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이른 시기에 큰 빛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분명 그런 사람은 아닌 듯 합니다.

그 동안 연구를 하면서 조급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다른 이의 좋은 논문을 읽을 때면 같은 수준의 연구 결과를 내 놓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초라함을 느끼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앞을 바라보니, 30년은 더 연구를 하면서 제 인생을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오래 가는 길도 좋은 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동기 부여를 하고 싶어서 ‘계간 권창현’이라는 것을 만들어 봤습니다.

앞으로 매 계절마다, 일 년에 네 차례, 제가 써서 저널에 투고한 논문이 출판 되기 전에 — working paper라고 하기도 하고 preprint라고 하기도 합니다 — ‘계간 권창현’ 사이트에 올려보려고 합니다. 일 년에 (남들에게 공개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논문 네 편을 써야 하는 신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출판이 되면 공개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제 홈페이지에 이미 working paper는 올리고 있습니다.

기간을 정해 놓고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연구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연구는 긴 시간 동안 심사숙고 하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뭔가를 발행하면서 제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마침 지금 이 시기가 어쩌다보니 지금까지의 제 연구 인생에서 working paper가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 생각 했고, 때 마침 여유시간이 조금 생겼습니다. 물론 모든 working paper가 지금 각기 다른 저널에서 출판을 위한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제 working paper의 숫자가 확 줄어들 수도 있겠지요. 그 때면 지금 진행 중인 연구가 잘 마무리 되어 새로운 논문을 공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정식으로 출판된 것 도 아닌 연구 결과물에, 그것도 전혀 유명하지도 않은 연구자의 논문을 발행하는 ‘계간 권창현’에 관심을 둘 사람은 아마 저 말고는 한 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는 저 자신을 위한 아주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남을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계간 권창현’의 발행이 저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더 동기부여가 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데 소소한 재미를 보태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소망은 부디 이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꾸준히 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떠벌리는 이유도 꾸준히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입니다. :)

앞으로 제 롤모델이자 경쟁자는 윤종신씨입니다.

창간호, 2014년 겨울호를 공개합니다.

http://quarterly.chkwon.net/#winter2014
계간 권창현 2014년 겨울호

 

비슷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거나 할 계획이 있으신 분은 공유해주시면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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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Responses

  1. 김진영 says: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저도 지금 출판을 준비하고 있지만, 연구자로서 조만간 비슷한 시도를 해봐야겠네요.

    • 권창현 says:

      감사합니다. 김진영 박사님께서 책을 준비 중이셨군요. 저도 언젠가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은데, 굉장히 인내가 필요한 프로젝트 일 것 같습니다. 출판 준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2. collie says:

    재밌는 프로젝트 잘 보고 갑니다. :) 대학원 연구라 하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법도 한데, 이렇게 보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 권창현 says:

      감사합니다!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나름 성공했군요 :) 일단 왠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ㅎㅎ

  3. 유경이 says:

    멋진일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 좀 동기부여도 되네요.^^

  4. Anonymous says:

    이제 벌써 봄호가 나올때가 되었나요?^^

  5. 이경희 says:

    박사학위를 받고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는데,
    선생님 프로젝트를 보고
    뭔가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6. Eunjin Chun says:

    정말 멋있으신 분이시네요!. 퀄시험 기간인데 교수님 글들에 빠져 이러고 있네요.
    이런 한국인 연구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7. YL says:

    안녕하세요 :) 현재 미국에서 faculty로 있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이 블로그를 발견했는데, 정말 재밌는 프로젝트인 것 같아서 리플 남기고 갑니다. 연구자로서 저도 시도를 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네요. 혹시 시작하게 되면 교수님 블로그에 소식 전하겠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힘도 나고 동기 부여도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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