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수 7년, 실패의 기록

저는 조교수 생활을 7년동안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종신계약을 위한 테뉴어 심사를 통과하여 부교수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얼마전에 받았습니다. 한숨 돌렸네요. 제가 원하던 것을 이루었으니 작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교수 생활 7년 동안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둘째 치고, 논문을 저널에 출판하기 위해 투고 했다가 거절 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였으며, 연구 자금을 지원 받기 위해 연구 제안서를 냈다가 선택 받지 못한 일도 매우 많습니다. ‘거절’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어떤 종류의 거절이든 선택 받지 못 하면 그 후유증이 상당합니다. 아무리 자주 거절 당해도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주 동안 우울하게 지냅니다.

학계에서는 동종 업계 사람들의 성공의 기록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교수들은 개인 홈페이지가 있고, 화려한 경력과 업적을 뽐냅니다.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각종 연구 재단에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기록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 논문 데이타베이스에는 출판된 논문들의 목록과 인용횟수등이 아주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런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 저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더 해지고 또 며칠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 거절의 역사, 혹은 실패의 기록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승진 심사에 대한 압박으로 마음이 조급해져서 제대로 되지 못한 결과물을 여기저기에 보냈던 제 조바심과 다급함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반응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1. 야, 너 진짜 힘들게 산다. 열심히 살아라.
2. 이 사람 진짜 허접하네. 이 사람도 잘 사는 거 같은데, 나도 잘 살 수 있겠다.
3. 나만 이렇게 거절 당하며 사는 거 아니구나. 다행이야.

3번이 아니라 2번의 반응이길 바랍니다.

논문

먼저 논문입니다. 정렬은 제 마음대로 아무 순서 없이 했습니다. 저널1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저널은 아니고, 단지 그 논문을 첫번째로 제출한 저널이라는 뜻입니다. 제 처참한 실패의 기록입니다.

논문a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4, 저널2 성공
논문b – 저널1 수정, 저널1 성공
논문c – 저널1 수정, 저널1 성공
논문d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3, 저널2 성공
논문e – 저널1 수정x2, 저널1 성공
논문f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2, 저널2 성공
논문g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2, 저널2 성공
논문h – 저널1 수정, 저널1 성공
논문i – 저널1 수정, 저널1 실패, 저널2 실패, 저널3 실패, 저널4 수정x2, 저널4 성공
논문j – 저널1 수정x2, 저널1 성공
논문k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2, 저널2 성공
논문l – 저널1 실패, 저널2 실패, 저널3 실패, 저널4 실패, 저널5 실패, 저널6 수정x4, 저널6 성공
논문m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2, 저널2 성공
논문n – 저널1 실패, 저널2 실패, 저널3 실패, 저널4 수정, 저널4 성공
논문o – 저널1 수정,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 저널2 성공
논문p – 저널1 수정,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 저널2 성공
논문q – 저널1 수정x2, 저널1 성공
논문r –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3, 저널2 성공
논문s – 저널1 수정, 저널1 실패, 저널2 수정x2, 저널2 성공

몇 번 제출하고 수정하다가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고 포기한 논문도 세 편 있습니다만, 이 리스트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투고해서 심사 중인 논문들도 꽤 있는데, 그 논문들도 역사가 상당합니다. 역시 이 리스트에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박사과정 중에 제출했던 논문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논문l의 경우는 특별히 처참합니다. 저널을 6군데나 거쳤습니다. 하지만 저 긴 시간을 지나면서 제가 자랑스러워 하는 논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슬프네요.

제안서

제안서는 더 참혹합니다. 논문과 달리 제안서는 대체로 ‘수정’해서 다시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면 그냥 새로 제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 재단에 따라서는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연구 재단을 겪어보진 못 했습니다. 제안서가 선택 받지 못 한 경우에는 수정해서 같은 재단에 다시 내기도 하고, 다른 곳에 다시 내기도 합니다. 제안서를 수정 할 때는 아이디어가 크게 바뀌기도 하고 내용을 조금 더 충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서, 같은 제안서인지 다른 제안서인지 구분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 제가 제 마음대로 적당히 구분하였습니다. 큰 의미는 없습니다. 어차피 얼마나 실패 했는지 보여드리기 위해서니까요.

제안서 역시 아무 순서 없이 정렬 되어 있습니다. PI 아래에 분류한 제안서는 제가 주도적으로 제안서를 작성해서 제출한 경우이며, Co-PI아래에 분류한 제안서는 제가 참여한 제안서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혼동이 되기도 하여, 적당히 분류했습니다.

PI
제안서b – 실패, 성공
제안서d – 실패
제안서e – 실패
제안서h – 실패
제안서i – 실패, 성공
제안서j – 실패
제안서k – 실패, 실패, 실패, 성공
제안서o – 실패
제안서p – 실패, 실패
제안서r – 실패
제안서u – 실패
제안서v – 성공
제안서z – 성공

Co-PI
제안서a – 실패
제안서c – 실패
제안서f – 실패
제안서g – 실패, 성공
제안서h – 실패, 실패, 실패, 성공
제안서l – 실패, 실패
제안서m – 실패, 실패, 실패
제안서n – 실패
제안서q – 실패
제안서r – 실패
제안서s – 실패, 실패
제안서t – 실패
제안서x – 실패, 실패, 성공
제안서y – 성공

제안서는 분류가 꽤 어려워, 위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대충 얼마나 거절 당했는지만 보시면 됩니다.

리젝 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 해라.

리젝 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 해라.

다시 한 번, 대단히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꽤 만족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논문과 제안서 실패로 밤잠 못 이루시는 분들께 위안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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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Responses

  1. JHC says:

    사회과학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예전에 교수님께서 “교수가 되려면 교수처럼 말하고 생각하라” 라고 쓰신 것을 읽고 지난 일년동안 제 마음가짐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덕분에 올해 학회에도 여러군데 가게 되고 지금은 논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연구방향 잡는데에도 나름 방황을 많이 했고 떠다니는 기분이었는데요. 지금도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방황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테뉴어 따신 거 정말 축하드려요!

    “실패의 기록” 공유해주신 거 정말 감사해요. 제가 advice blog 여기저기 가봤는데요 교수님께서 가장 실질적으로, 상세하게 조언을 해주시는 거 같습니다. 나중에 저만의 실패의 기록을 공유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네요.

  2. 김재훙 says:

    권창현 교수님, 테뉴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번에 신경써주신 부분까지 여러 모로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3. 김혜선 says:

    축하해요. 부교수가 되셨군요… 그럼 이제 과의 행정일도 서서히 더 많이 책임지시겠네요… 저희 남편은 지금 정교수 심사 들어가 있습니다. :) 연구보다는 회의와 행정일이 더 많아지는 때가 되겠네요.. 애들이 다른건 몰라서 아빠는 열심히 사는 사람인거에는 공감을 합니다.

  4. 이승재 says:

    좋은 글 매번 잘 읽고 갑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얼마 전 NYU 졸업식 축사에서 얘기했던 “거절의 인생”이 생각나는군요 :-)

  5. 김진영 says:

    자신의 실패에 대해 글을 쓰는게 쉬운일은 아니셨을텐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6. 박효진 says:

    안녕하세요. 우연한 계기로 교수님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작년부터 구독중인, 이제 갓 석사학위를 딴 학생입니다. 제가 앞으로 공부를 계속 이어나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묻고싶은것이 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메일주소를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댓글에 남기기 어려우시면, 제 이메일을 남겨놓았으니 제 이메일로 연락을 주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7. 이경희 says:

    실패기록을 공유하시다니.
    너무 멋있잖아요!
    (막 따라하고싶어집니다 ㅋ)

  8. workdic says:

    대단하십니다! 부교수 축하드려요!

  9. IMES says:

    축하드립니다.

  10. mra says:

    눈물날 거 같네요.. ㅠ 국내 박사과정 중인 학생인데요, 얼마 전 수정 후 재심받고 이틀밤 새서 수정했는데도 실패해서 많이 우울했는데.. 힘내서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듭니다… 오늘 우연히 이 블로그 알게 되어 다른 글들도 읽으면서 토닥토닥 위로받았는데, 이 글은 정말.. ㅠ 이런 글은 정말 공유하고 싶지 않으셨을텐데..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을 생각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ㅠ 그리고, 부교수 승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권창현 says:

      제가 답을 너무 늦게 달아서, 이걸 보실지 모르겠지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힘들어 질 때, 다시 와서 mra님께서 남겨주신 댓글 보고 힘을 얻고 갑니다.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11. leo says:

    부교수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
    논문이 잘 안 풀려서 요즘 우울해 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인데, 이 글 읽고 많은 위로(?) 받고 갑니다~^^

    • 권창현 says:

      논문은 잘 풀리는 적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맨날 뭐가 안 됩니다. ㅎㅎㅎ

      • Anonymous says:

        그 말 또한 위로가 됩니다. 나에게만 늘 문제가 있는가 했는데.. 연구는 안 풀리는게 default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거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 자괴감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른 것보다 이런 나와 관련된 감정들과 계속 마주해야 하는 이 시간들이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교수님으로 인해 진정한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12. mang9 says:

    방금.. 두번째 낸 저널에서 논문이 리젝 됐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되게 괜찮다고 생각하고 훌훌 털어넘겨야지 싶어서도, 제가 비 주류의 연구를 하고있다는 느낌과 내가 이런 사람이지 라는 자책때문에 우울해지네요. 저도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봐야 겠습니다. 늦었지만, 승진 축하드립니다.

    • 권창현 says:

      학계에 있다는 건 온갖 종류의 리젝과 친숙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힘내시고 지금 즈음이면 다시 또 좋은 결과를 얻으셨을거라 믿습니다!!!

  13. la dolce vita says:

    기록을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학자로서 또 인간적으로도 존경스럽습니다.

  14. sizuku says:

    교수로서 솔직히 연구역량이 있기나 한건지 스스로 회의감이 들어 하릴없이 웹서핑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우연히 들어왔다가 스트레스 풀고 다시 힘받아 갑니다. ^^ 뵌적은 없지만,, 권창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15. Viviana LEE says:

    박사학위 받은지 얼마 안된 신진입니다. 한국 Job market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혹은 제 역량이 충분치 않아서 요즘 계속 Reject 을 받고 우울하던 차에 교수님 글 보고 힘 얻고 갑니다^^.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학계에 있다는 것 온갖 종류의 리젝과 친숙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문장에서 교수님의 내공과 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 지나가다 says:

    지나가다 교수님 글을 보고 인상깊어서 몇자 남깁니다.
    오늘 리젝메일을 받고 (저널1 실패, 저널 2실패, 저널 3실패) 우울한 마음이 계속 됐는데..
    교수님의 실패의 기록을 보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논문l 이요…
    실패의 기록… 멋진 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 작성해봐야겠네요~ ^^

  17. 최광효 says:

    앞으로 박사과정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 박사과정생으로써 힘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18. 옥사마 says:

    박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외노자입니다.. 이것 저것 검색하고 찾아보다가 눈에 띄는 글을 보고 들어와 보았습니다. ‘ 거절과 함께하는 삶 ‘ 을 보고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에 힘이 빠집니다..
    하늘은 왜이렇게 시련을 덩어리로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담한 결과에 지금 부터 준비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데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심사결과 축하드립니다. 존경합니다.
    다시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고 달려보겠습니다.

  19. 规利 says: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박사 3년차 학생입니다. 아직 게재한 논문도 없고, 수정에 수정만 거듭하고 있는 저널 초고.. 교수님들께서도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에 위안 얻고 갑니다. 이런 반응 보다도 나도 잘 살 수 있다여야 할텐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지나가다씁니다. says:

      힘내세요. 양보다는 질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질보다 양을 선호할지는 모르지만, 양보다는 역시 질이 우선입니다. 퇴고를 거친민큼 만족할 수 있는 논문을 작성하실 수 있을겁니다. IF 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연구논문과 가장 알맞은 테마를 가진 저널에 내는 것이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IF 가 낮은 저널이라도 인용수가 충분히 오르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힘내세요. 박사는 버티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20. 이태현 says:

    교수님 덕분에 하루가 환해졌습니다. 교수님의 하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들로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태현 올림

  21. DaramG says:

    나의 실패는 왜이리 괜찮지 않을까요. 교수님의 실패의 과정이, 그리고 그 과정 속의 성공의 결과가 저에게 위로를, 또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 할 수 있게 힘을 주네요. 좋은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2. 지나가는 사람 says:

    우연히 구글링 하다가 글을 읽고 갑니다. 저는 이쪽 세계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지만, 인생에 힘이 되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3. Dreamer says:

    최근 처음 쓴 논문을 리젝받고 우울하던 참에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첫 저널에서 수정이 아닌 실패?를 받으시면 다른 저널에 투고하고 첫 저널에서 수정을 받으면 계속 그 저널에 도전하시는 건가요? 처음 도전한 저널에 실패가 뜨면 수정해서 재도전해도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1. October 22, 2015

    […] 조교수 7년, 실패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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